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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인 쟌(가명)씨!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내기
6월 16일 난민인정자 쟌씨와 그의 가족을 만났다. 그는 상담을 맡아 일하면서 처음 접하는 비자인 'F-2-2'를 소지하고 있었다. 소지하고 있는 비자는 한국 내에서 2006년 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3년간의 체류기간을 허용하고 있었다.
난민을 신청해 놓았던 쟌은 2005년 6월경 시흥에 와 거주하며 일을 해오다 9월 강제단속되어 보호소 생활을 했다. 외국인으로 난민을 신청한 경우 법무부에서는 'G-1' 는 임시비자를 주어 난민으로 인정되거나 불허될 때까지 체류를 허가하고 있다. 하지만 'G-1' 는 체류는 허가할지언정 노동은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G-1' 비자 소지자가 사업장에서 일하다 단속되면 출입국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는 보호소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쟌은 다행이 최근 2006년 2월 난민 지위를 인정을 받고 보호해제를 받아 다시 시흥으로 돌아 왔다. 난민 인정을 받으면서 안도했을 그였지만 그의 미래는 아직도 어둡기만 했다. 그에게는 아내는 물론 수개월 된 아이가 있었는데,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9개월여 수입이 없어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입이 있었던 건 알고지낸 교회 목사님을 통해 간간히 10여만원씩 보조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도와주던 목사님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보조도 끊기게 되었던 것이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그였지만 한국어를 거의 할 수 없는 데다 불법체류 외국인을 꺼려하는 요즘 F-2-2비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취업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된 시흥 사회복지과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소개를 받아 본 센터에 통역을 요청하면서 상담자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한 달에 30만원을 주는 2칸짜리 월세방에서 동료와 방을 나누어 사용하며 친구에게 10만원을 받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동료가 곧 귀국하게 되어 본인 몫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아이는 모유수유가 부족하여 분유를 먹여야 했는데, 그런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최저생활비보장과 함께 취업이었다.
함께 사정이야기를 듣던 사회복지과 기초생활보장계 직원도 아이의 육아 등 시급히 보조가 필요한 경우이나 난민인정자를 지원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찾더라도 일정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허가받은 외국인이주노동자의 구직을 지원하고 있는 고용안정센터를 찾아 난민인정자의 구직신청과 함께 구직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담당자에게 최근 고용허가제(EPS, E-9-2)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이주노동자가 1년마다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비해 난민인정자는 3년간의 비교적 안정적인 체류를 허가받은 외국인으로 사업장에서도 이에 대해 안내를 받는다면 선호할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난민인정자(F-2-2)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관련법도 미약한데다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외국인등록번호만으로는 구직신청을 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상담자가 쟌의 현재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사회복지과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방법을 찾고 있다고 하자, 담당자도 태도를 바꿔 내부적으로 의논해보겠다며 다소 호의적이어서 연락처를 남겼다. 당일 오후 사회복지과에서 쟌이 고용안정센터로부터 사업장을 소개받아 가야한다는 전화가 왔고, 통역이 가능한 실무자가 동행하여 사업장에 다녀왔다. 사업장에서는 3일간 일을 해보고 정상 출근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이후 고용안정센터의 중간 관리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현재까지 난민인정자의 한국 내에서의 지위가 부정확하고 관련법규나 지침이 분명하지 않아 구직 지원이 쉽지 않았다는 것과 담당직원 개인의 몫으로 알아봐주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시의 시민으로 주소지를 두고 3년간의 체류를 당당히 허가받았음에도 난민인정자의 사회활동에 대한 보장이나 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난민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출신국을 떠난 이주민과는 달리, 출신국으로 돌아갈 경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비호신청자’이다. 따라서 난민은 국제적인 협약에 의해 그 지위를 보호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1992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가입하고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 집행이사회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6월 20일은 UN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하지만 최근 난민인정을 신청하는 자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난민인정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과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심사기간의 장기화(6월~3년) 등 효율적인 난민인정 심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참고로 한 자료를 보면 1994년부터 총 809명 난민 신청 (’03년 84명, ’04년 148명, ’05년 410명)자가 발생했고 이 중 총 11개국 44명 난민 인정 (’03년 12명, ’04년 18명, ’05년 9명, ’06.1월 3명)을 받았을 뿐이다. 이와 함께 출입국관리법상 난민인정을 위한 신청기간이 1년으로 제한되어 있고, 난민신청자 및 난민불허자에 대한 권익보호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인권단체 등에서 개선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다.
본센터의 내담자 중에도 2명의 난민신청자가 있는데 한명은 방글라데시인 ‘모하잔(가명)’씨로 무슬림이 대부분인 출신국에서 기독교인으로 박해를 받아 생명의 위협을 피해 지난 2003년 난민을 신청했으나, 처음에 이주노동자의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체류 연장으로 오해받아 난민인정을 불허 받았고 다시 이의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다른 한명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와서 일하다 강제단속된 파키스탄인 ‘알리(가명)’씨인데, 지난해 지진으로 생활터전과 가족을 모두 잃어 본국으로 귀환하여도 아무 연고가 없어져 난민을 신청해 놓고 있다.
이들에게 미래를 줄 수 있는 한국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자면 빠른 시일 내에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일 게지만, 그보다도 쟌씨와 같은 난민이정자의 삶이 안정적으로 주어져야 할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쟌씨! 그는 그의 가족이 있는 한 죽을힘을 다하여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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